📖 호러스 언더우드

“원두우(元杜尤·한국 이름)” · 1885년 부활절에 입국해 한국 장로교와 연세의 뿌리를 놓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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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병풍 앞 의자에 앉은 백발의 호러스 언더우드 (1916)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1916년 무렵의 실제 사진이에요. 뒤로 보이는 한국식 병풍이 그가 이 땅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 줘요.
⏱️ 10초 카드 · 조선 개항기 · 근대 선교의 시작 (1859~1916)
1885 부활절 입국성경 한글 번역연세의 뿌리
여는 질문 — 바깥에서 온 사람이 '우리 글자'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는 것 —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름

한국어호러스 언더우드
원어Horace Grant Underwood
실제 발음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로마자Horace Grant Underwood
영어권Horace Grant Underwood
별칭원두우(元杜尤·한국 이름)
미국 · 1859~1916

왜 이 사람인가

이 시리즈에서 언더우드는 '학교와 병원으로 들어온 복음'의 한 얼굴이에요. 천주교가 박해 속에 뿌리내렸다면, 그는 개항 이후 교육·한글·교회로 다가간 개신교의 길을 보여 주죠. 특히 '누구나 직접 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성경을 한글로 옮긴 일은, 종교가 뜻밖에 '우리 글자'를 살린 흥미로운 사례예요. 한국 개신교 이야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어요.

생애

1859년 영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언더우드는, 신학을 공부하며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가기를 꿈꿨어요. 그렇게 택한 땅이 조선이었죠. 1885년 부활절, 그는 감리교의 아펜젤러와 같은 배로 제물포에 내렸어요 — 둘 다 스물대여섯의 젊은이였죠.

아직 직접 전도가 조심스러운 때라, 그는 먼저 학교와 고아원을 세우고 의료 선교를 도우며 신뢰를 쌓았어요. 곧 <b>새문안교회</b>를 세워 한국 장로교의 첫 뿌리를 놓았고, 전국을 다니며 교회를 일궜죠.

그의 가장 큰 자취는 '글'에 있었어요. 그는 한국어를 깊이 익혀 <b>한영사전</b>과 문법서를 펴내고, 다른 선교사·한국인들과 함께 <b>성경을 한글로 번역</b>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어요. 누구나 직접 성경을 읽게 하려는 이 일이, 한글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도 한몫했죠.

그는 교육에도 힘써 훗날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로 이어지는 학교를 세웠어요. 1916년 건강이 나빠져 미국에서 숨졌지만, 그의 아들·손자로 4대에 걸쳐 언더우드 가문은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 갔어요 — '원두우'라는 한국 이름으로요.

남긴 말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그러나 주께서 이 땅에 보내신 뜻을 믿고 나아갑니다.”
오랫동안 '언더우드의 기도'로 전해 내려오는 글 — 다만 실제 그의 친필이 아니라 후대에 정리·창작된 글이라는 견해가 있어, 그대로 '그의 말'로 단정하지는 않아요 · 출처: 전승(작자·연대에 논란 있음 — '전해지는 기도'로 표기)

연표

빛과 그림자언더우드는 교육·한글·의료로 조선 근대에 깊은 자취를 남겼어요. 다만 선교는 '복음'과 함께 서양의 문물·가치관도 들여왔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빛'과 '서구화의 그림자'를 함께 봐야 해요. 그를 '은인'으로만도, '문화 침투의 첨병'으로만도 보지 않고 — 그 두 면을 함께 지닌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역사에 정직해요.

더 깊이 (고등·일반)

한글에 올라탄 복음 — 성경 번역과 우리 글자
개신교에는 '누구나 성경을 직접 읽어야 한다'는 정신이 강했어요. 언더우드는 이 신념으로 한국어를 깊이 익혀 한영사전·문법서를 펴내고, 다른 선교사·한국인 학자들과 함께 성경을 한글로 옮기는 일에 평생을 바쳤죠. 당시 '언문'이라 낮춰 보던 한글이, 성경·찬송가·교회 신문을 통해 '누구나 읽는 글자'로 위상을 높이는 데 개신교가 한몫했어요.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이지만, 그것을 '일상의 글자'로 넓히는 데는 이런 여러 흐름이 작용했고 — 언더우드는 그 중요한 한 축이었어요.
참고: 한국 개신교 성경 번역사·한글 보급 일반
4대에 걸친 한국 사역 — 언더우드 가문
언더우드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그의 아들(원한경)·손자로 이어지며 언더우드 가문은 약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교육·선교에 헌신했고, 연세대학교와 깊은 인연을 이어 갔죠. 한 외국인 가문이 4대에 걸쳐 한 나라의 근대 교육과 함께한 것은 드문 일이에요. 다만 이런 '헌신'의 이야기도, 그것이 동시에 서양의 가치와 영향력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하면 더 균형 있게 볼 수 있어요.
참고: 언더우드 가문·연세대학교 역사 일반
선교의 빛과 그늘 — '근대화'인가 '서구화'인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병원·교회는 분명 조선 근대의 한 토대가 됐어요. 신분과 성별의 벽을 넘어 평민·여성에게 배움과 치료를 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근대'에는 서양 중심의 가치관도 함께 담겨, 우리 전통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고민을 낳기도 했죠. '문명을 가져다준 은인'이라는 시선과 '서구 문화 침투의 통로'라는 시선이 모두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어요.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빛과 그늘을 함께 보는 것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 길이에요.
참고: 한국 근대 선교에 대한 평가 논쟁 일반

사람의 그물 — 함께 읽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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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 언더우드한국 장로교·연세의 뿌리를 놓은 선교사의 생애를 다룬 전기들.
  • 한국 개신교사개항기 선교의 전체 흐름 속에서 언더우드·아펜젤러를 함께 보기.
📍 가 볼 곳
  • 새문안교회 (서울)언더우드가 세운 한국 장로교의 첫 교회.
  • 연세대학교 (서울)언더우드가 세운 학교에서 비롯한 대학 — 교내에 그의 동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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