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리 아펜젤러

“아편설라(亞篇薛羅·한국 이름)” ·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 근대 교육의 문을 연 감리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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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은 19세기 말 서양 남성의 흑백 초상 — 헨리 아펜젤러
출처: Wikimedia Commons (W. E. Griffis, 《A Modern Pioneer in Korea》) · 퍼블릭 도메인그의 생애를 다룬 책에 실린 초상이에요.
⏱️ 10초 카드 · 조선 개항기 · 근대 교육의 시작 (1858~1902)
배재학당정동제일교회부활절 입국
여는 질문 — '학교'로 다가간 선교는, 한 사회에 무엇을 남겼을까?

이름

한국어헨리 아펜젤러
원어Henry Gerhard Appenzeller
실제 발음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로마자Henry Gerhard Appenzeller
영어권Henry Appenzeller
별칭아편설라(亞篇薛羅·한국 이름)
미국 · 1858~1902

왜 이 사람인가

이 시리즈에서 아펜젤러는 '복음이 학교의 모습으로 온' 장면이에요. 그가 세운 배재학당은 한국 최초의 근대 사립학교로, 종교가 뜻밖에 '근대 교육'의 문을 연 사례를 보여 주죠. 같은 날 입국한 언더우드와 짝으로, 박해 대신 교육·의료로 다가간 개신교의 길을 대표해요. 마지막 순간 남을 구하려다 순직한 그의 죽음까지 — 한국 개신교 이야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어요.

생애

18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아펜젤러는, 신학을 마치고 새로운 선교지를 찾던 중 조선으로 향했어요. 1885년 부활절, 그는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같은 배로 제물포에 내렸죠 — 그가 도착한 부활절에 남긴 기도가 지금도 전해져요.

그는 도착하자마자 학교를 세웠어요. 1885년에 문을 연 <b>배재학당</b>은 한국 최초의 근대 사립학교로, 고종이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의 이름을 내렸죠. 신학문과 영어를 가르친 이 학교에서 이승만·주시경 같은 인물이 자랐어요.

아펜젤러는 <b>정동제일교회</b>를 세워 한국 감리교의 뿌리를 놓았고,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성경을 한글로 옮기는 일에도 힘썼어요. 학교·교회·번역 — 그는 '직접 전도'보다 이런 통로로 조선 사회에 다가갔죠.

1902년, 그는 성경 번역 회의에 가던 배가 다른 배와 충돌해 가라앉을 때 — 함께 탄 한국인 조사와 학생을 구하려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요. 마흔넷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죠. 그가 세운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그의 자취를 잇고 있어요.

남긴 말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무덤의 빗장을 부수신 분께서, 이 백성을 묶은 어둠의 빗장도 부수시고 빛과 자유를 주시기를 빕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제물포에 상륙하며 남긴 글로 전해지는 문장 (번역) · 출처: 아펜젤러의 부활절 기록(1885, 전해지는 글)

연표

빛과 그림자아펜젤러는 배재학당으로 근대 교육의 문을 열고, 마지막 순간 남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헌신의 사람으로 기억돼요. 다만 그가 연 '근대 교육'에도 서양 중심의 가치관이 함께 담겼다는 점은 균형 있게 봐야 해요. 그럼에도 신분과 성별의 벽 너머 배움의 문을 연 그 자취는, 조선 근대의 중요한 한 출발점이었어요.

더 깊이 (고등·일반)

배재학당 — 한국 근대 교육의 문
아펜젤러가 1885년 세운 배재학당은 한국 최초의 근대 사립학교예요. 포교가 아직 조심스러운 때라, 직접 '예수를 믿으라' 하기보다 교육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지혜로웠죠. 고종이 '인재를 기른다(培材)'는 뜻의 이름을 내렸고, 신학문과 영어를 배운 이 학교에서 이승만·주시경 같은 인물이 자랐어요. 비슷한 시기 메리 스크랜턴이 세운 이화학당(최초의 여성 교육기관)과 함께, 선교사들의 학교는 신분과 성별의 벽을 넘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근대적 가치를 심었어요.
참고: 배재학당·한국 근대 교육사 일반
마지막 항해 — 남을 구하려다
1902년, 아펜젤러는 성경 번역 관련 회의에 참석하러 배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어요. 그가 탄 배가 다른 배와 충돌해 가라앉을 때, 그는 함께 탄 한국인 조사와 여학생을 구하려다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죠. 마흔넷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어요. '학교로 다가간 선교사'가 마지막 순간 보여 준 것은, 자기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려는 모습이었죠 — 그가 가르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 죽음이 말해 주는 듯해요.
참고: 아펜젤러 순직(1902) 기록 일반
두 선교사, 두 교파 — 언더우드와 함께
아펜젤러(감리교)와 언더우드(장로교)는 1885년 부활절에 같은 배로 들어온 동료이자, 한국 개신교의 두 큰 줄기를 나란히 세운 사람들이에요. 둘은 교파는 달랐지만 성경 한글 번역 같은 일에서는 함께 힘을 모았죠. 아펜젤러가 '학교(배재)와 감리교회(정동제일)'를, 언더우드가 '장로교회(새문안)와 사전·대학(연세)'을 일군 것을 나란히 보면 — 초기 한국 개신교가 어떻게 교육·번역·교회를 통해 자리 잡았는지가 한눈에 들어와요.
참고: 한국 개신교 초기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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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 아펜젤러배재학당을 세운 선교사의 생애를 다룬 전기들.
  • 한국 개신교사개항기 선교의 전체 흐름 속에서 아펜젤러·언더우드를 함께 보기.
📍 가 볼 곳
  •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서울 정동)배재학당 옛 건물 — 한국 근대 교육의 출발점을 눈으로.
  • 정동제일교회 (서울)아펜젤러가 세운 한국 감리교의 첫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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