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본명은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 이름 뜻은 라틴어로 "좋은 모험"(bona ventura)이에요.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모험이라기보다 앓는 날들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력이 약했고, 다리에는 통풍이라는 병이 있었어요. 통풍은 발과 무릎이 부어오르고 뜨겁게 아픈 병이에요. 카발리에리는 평생 이 두 가지와 함께 살아야 했어요.
15살이 되었을 때, 부모는 그를 예수회 수도원에 보냈어요. 거기 가면 책을 읽을 수 있고, 따뜻한 곳에서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마지못해 갔지만, 그는 곧 수도원의 도서관과 사랑에 빠졌어요.
그는 곧 수도원 정복(흰색 옷)을 입고 평생을 그 속에서 살게 돼요.
1616년, 카발리에리는 피사(Pisa)의 수도원으로 옮기게 돼요. 그곳에는 한 노학자가 있었어요. 이름은 베네데토 카스텔리. 그리고 카스텔리에게는 스승이 있었어요.
그 스승의 이름이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였답니다.
당시 갈릴레오는 50대 초반, 이미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였어요.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주장해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지요.
카스텔리는 갈릴레오에게 편지를 썼어요.
1617년 봄, 18살 카발리에리는 갈릴레오를 만나러 갔어요. 갈릴레오는 그에게 어려운 기하 문제 하나를 풀게 했어요. 카발리에리는 분필을 들고 40분 동안 칠판 앞에서 침묵했어요. 갈릴레오는 그가 모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카발리에리가 갑자기 분필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단숨에 답을 그려냈어요. 다른 방법으로도, 또 다른 방법으로도.
이 만남 이후 갈릴레오와 카발리에리는 3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아요. 그것이 카발리에리의 평생 가장 큰 보물이 되었답니다.
1620년대, 카발리에리는 부피라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어요. 직육면체나 정육면체 같은 단순한 입체는 부피를 잴 수 있었어요. 그러나 각뿔, 원뿔, 구처럼 곡면이거나 뾰족한 입체는 부피가 정확히 얼마인지 답을 알았어도 왜 그런지 잘 설명하지 못했어요.
각뿔의 부피가 같은 밑면·높이 각기둥의 1/3이라는 사실 — 이건 옛날 아르키메데스가 알았어요. 그런데 왜 1/3일까? 그저 외우라고? 카발리에리는 그게 답답했어요.
어느 날 그는 수도원 책상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있었어요. 책을 천천히 옆으로 기울였어요. 책 모양은 비뚤어졌지만, 두께는 그대로였어요. 그는 멈칫했어요.
그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어요. 다음 날 그는 친구에게 종이 더미를 가져오게 했어요. 똑같은 종이 100장. 한 더미는 똑바로 쌓고, 다른 한 더미는 비스듬히 기울여 쌓았어요.
그날 카발리에리는 종이 한 장을 이렇게 적었어요:
이게 1635년 그의 책 「Geometria Indivisibilibus (불가분량의 기하학)」의 핵심이에요.
카발리에리는 자기 원리로 각뿔 부피가 왜 1/3인지 처음으로 깔끔하게 설명했어요.
먼저 그는 세 개의 합동인 각뿔이 같은 밑면·높이의 각기둥 안에 정확히 들어가는 특별한 경우를 보여줬어요. 세 각뿔을 합치면 각기둥이 되니까:
그래서 각뿔 한 개 = 각기둥의 1/3!
그리고 이걸 일반화했어요. 모든 각뿔(밑면이 무엇이든)에 대해, 같은 밑면·높이의 다른 각뿔과 단면적이 같음을 보였어요. 그러면 카발리에리 원리로 부피도 같다.
이때 그가 도입한 개념이 "불가분량(indivisibilibus)" — 무한히 얇은 단면이에요. 이것이 200년 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전시킬 미적분의 무한소(dx) 개념의 직접적인 조상이랍니다.
1633년,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요.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어요. 그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종신 가택연금을 받았지요.
이때 카발리에리는 35살, 볼로냐 대학교 수학 교수였어요. 그는 갈릴레오의 가장 친한 제자였고, 갈릴레오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시대였어요.
카발리에리는 자기 책 「Geometria Indivisibilibus」의 출판을 망설였어요. "무한히 얇은 단면"이라는 개념 자체가 당시 가톨릭 신학에서 의심받던 원자론과 비슷해 보였거든요.
그러나 갈릴레오는 가택연금 중에도 카발리에리에게 편지를 썼어요.
카발리에리는 2년을 더 다듬어, 1635년 책을 출판했어요. 라틴어로 무려 700쪽이 넘었어요.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어요. 영국의 존 월리스(뉴턴의 스승), 프랑스의 파스칼, 독일의 라이프니츠 — 17세기 모든 수학자들이 이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그 책에서 영감을 받아 미적분이 만들어졌답니다.
카발리에리는 평생 통풍으로 고생했어요. 어떤 날은 발이 너무 아파서 강의실에 가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학생들을 받아 가르쳤어요. 손이 떨려서 글씨가 흐려지면, 제자에게 받아쓰게 했어요. 그래도 그는 30년 동안 11권의 책을 썼어요.
부피와 적분뿐 아니라, 그는 삼각함수표, 로그, 광학 분야의 책도 썼어요.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1647년, 카발리에리는 49세의 나이로 볼로냐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갈릴레오는 5년 전 (1642년) 이미 세상을 떠났고, 카발리에리는 스승을 따라갔어요.
볼로냐 대학교에서는 카발리에리를 위해 큰 추모식을 열었어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이 모두 모여, 그가 30년 동안 강의했던 칠판 앞에서 그의 책 「Geometria」를 들고 한 페이지씩 낭독했답니다.
같은 해 (1647년) 영국에서는 어린 아이작 뉴턴이 5살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카발리에리의 단면 쌓기 → 뉴턴의 미적분 → 현대 과학. 시간은 이렇게 이어져요.
위에서 본 결과. 카발리에리 원리로 깔끔하게 증명.
반지름 $r$인 반구와, 반지름 $r$·높이 $r$인 원기둥에서 같은 반지름·높이 원뿔을 빼낸 것.
카발리에리 원리 → 반구 부피 = 원기둥 − 원뿔 = $\pi r^2 \cdot r - \frac{1}{3}\pi r^2 \cdot r = \frac{2}{3}\pi r^3$.
따라서 구 부피 = $\frac{4}{3}\pi r^3$.
같은 반지름 $r$, 높이 $2r$인 원뿔 : 구 : 원기둥 부피 비 = $1 : 2 : 3$.
아르키메데스가 가장 자랑스러워해서 자기 묘비에 그 그림을 새겨달라고 했어요. 1800년 뒤 카발리에리가 그 직관을 일반 원리로 정리한 거예요.
병원에서 받는 CT 스캔, 알아요? 인체를 얇게 가로로 찍어서 단면들을 만들고, 그것을 컴퓨터로 다시 쌓아 입체로 만들어요. 이게 정확히 카발리에리의 원리예요. 1635년의 한 수도사 아이디어가 지금 우리 몸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됐어요.
3D 프린터도 똑같아요. 얇은 층 → 얇은 층 → 얇은 층을 쌓아 입체를 만들어요. 프린터 안에서 카발리에리가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몰라요.
서기 5세기 중국의 수학자 조충지(祖沖之, Zu Chongzhi)와 그의 아들 조긍이 구의 부피를 구하면서 카발리에리 원리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어요. 카발리에리보다 1100년 일찍이지요! 수학은 어디서 누가 발견하든, 결국 같은 진리를 향해 가요.
독일의 라이프니츠(1646~1716, 카발리에리가 죽기 1년 전 태어남)는 1675년 일기에 적분 기호 $\int$를 처음 썼어요. 이건 라틴어 "Summa"(합)의 첫 글자 S를 길게 늘인 거예요. 즉 "단면을 모두 더한다"는 뜻.
스승의 어깨 위에서 다음 사람이 한 걸음 더 멀리 봐요.
수학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협업이에요.
카발리에리가 30년 가르친 볼로냐 대학교는 1088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에요. 지금도 운영 중! 카발리에리의 강의실이 어딘가 남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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