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기 전에
수행평가는 끝나면 사라진다. 점수도 곧 잊힌다.
그런데 정도전이라는 사람의 삶을 한 번 제대로 따라가 보면,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는 질문 몇 개가 생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중에, 누군가에게는 폭력인 것이 있는가?"
"옳다고 믿는 것을, 자리를 걸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
이 앱은 그 질문을 만들어주기 위해 있다. 답은 너 스스로 찾아야 한다.
🗺️ 8개 탭의 길
| 탭 | 무엇을 얻나 |
| 👤 인생 | 천민의 손자가 어떻게 조선의 설계자가 되었나 (스토리) |
| 🏞️ 시대 | Q2의 진짜 풍경 — 키워드 뒤의 사람들 |
| 📿 사상 | Q1 답: 불교가 죄가 없다. 성리학이 영원한 정답도 아니다. |
| 🌾 토지 | Q2 답: "수조권" 6글자에 들어 있는 김 농부의 하루 |
| ⚖️ 개혁 | Q3 답: 5개의 풍경에 대한 5개의 처방 (매칭 게임) |
| 💡 사고법 | Q4 답: 너만의 개혁안을 5단계로 만들어보기 |
| ❓ 질문 | 평생 가져갈 4개 질문 |
💡 시간이 없으면 👤인생 + 💡사고법 두 탭만 봐도 핵심은 잡힌다.
🏞️ 고려 말의 4가지 풍경
교과서는 "고려 말 위기"를 키워드 4개로 끝낸다. 하지만 실제 풍경은 이런 것이었다. 각 카드를 눌러 펼쳐보자.
한 권문세족 대감이 100개 마을의 땅을 가진다.
원래 그 땅 주인이었던 농민들은 항의도 못 하고 소작농으로 떨어진다.
수확량의 70%를 대감에게 바친다. 그래도 대감은 "이 땅은 면세지"라며 국가에 세금도 안 낸다.
→ 국가는 가난해지고, 농민은 죽고, 귀족만 살찐다.
거대한 사찰이 토지를 수십만 평 가진다.
"부처님께 바친 땅"이라며 세금 면제.
사원에는 노비가 수백 명. 농민들은 사원에 빚을 지고 노비로 팔려간다.
→ 종교가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가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원나라가 고려 왕을 사위로 삼는다. 왕은 원의 눈치를 보느라 신하를 통제하지 못한다.
왕이 약하니 권문세족이 나라를 좌우한다. 왕은 허수아비, 신하는 도둑.
→ "민(民)을 위한 정치"는커녕, 정치 자체가 사라졌다.
왜구가 배를 타고 해안 마을을 통째로 약탈한다.
홍건적이 북쪽에서 내려와 도시를 불태운다.
국가의 군대는 무능하고, 귀족들은 자기 사병만 챙긴다.
→ 국가가 백성을 지킬 수 없으면, 그 국가는 이미 끝난 것이다.
⚡ 4개 풍경의 공통점
백성은 보이지 않았다.
귀족도, 사원도, 왕도, 군대도 — 누구도 농민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정도전이 유배지에서 본 게 바로 이 풍경이다. 이걸 본 사람만이 새 나라를 꿈꿀 수 있다.
📿 불교는 죄가 없다
고려 500년 동안 불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탱했다. 몽골 침략 때 팔만대장경. 승려는 학문의 중심. 사찰은 가난한 사람의 쉼터.
문제는 "제도화된 불교"였다
- 면세 토지 → 세금 회피 도구로 변질
- 거대 사원 → 부동산 투기처
- 왕사·국사 제도 → 정치 개입
- 노비 소유 → 사람을 부리는 종교
어떤 좋은 것도 절대화·독점화되면 폐단이 된다.
불교가 나빠진 게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불교가 나빠진 것이다.
📚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12세기 송나라 학자 주희가 정리한 새로운 유교. 한 줄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우주의 이치(理)가 있다. 그 이치를 따라 살아야 한다."
왜 혁명적인가? — 옛 사상 vs 성리학
옛 사상
성리학
왕은 하늘이 보낸 특별한 사람
왕도 사람, 같은 이치 아래 있다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
모든 사람의 본성은 같다 (성즉리性卽理)
종교(불교)가 진리를 말한다
학문(공부)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신하는 왕에게 복종
잘못된 왕은 비판해야 한다
성리학은 "이성과 학문으로 다스리는 나라"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
🤔 그러면 성리학 도입 자체는 좋은 것인가?
짧은 답: 그 시대엔 명백한 진보. 하지만 영원한 정답은 아니다.
좋은 점
- 종교가 정치를 휘두르던 시대 → 학문과 이성이 정치 기준
- 신분 절대주의 → "본성은 같다"는 평등 관념의 씨앗
- 왕의 자의적 통치 → 도리(道)와 의(義)에 따른 통치
한계
- 200년 후 조선 중기, 성리학 자체가 또 다른 권위주의로 굳어진다 (사림 당쟁)
- 양반·상민 신분 차별을 새 방식으로 정당화하기도
- 18세기 "실학" 운동이 성리학의 폐단을 비판하며 등장
⚡ 핵심 통찰
어떤 이념이든 절대화되면 다음 시대의 적폐가 된다.
정도전 시대의 성리학은 진보였다. 200년 뒤엔 개혁 대상이 됐다.
이건 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네가 옳다고 믿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비판받을 수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 폐단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정도전의 답은 3중 처방. 마음만 바꾸려 하지 않았다.
| 차원 | 처방 |
| 이념 | 성리학으로 사고방식을 바꾼다 (불씨잡변, 성균관) |
| 제도 | 법전·과전법·관료제로 시스템 자체를 바꾼다 |
| 사람 | 과거제로 능력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게 한다 |
⚠️ "착하게 살자"는 도덕 호소만으로는 폐단이 안 사라진다.
시스템(제도) + 사상(교육) + 사람(인사)을 동시에 바꿔야 한다.
어떤 사회 문제든 — 학원비, 환경, 차별 — 마음만 호소하지 말고 셋을 함께 봐라.
🌾 김 농부의 하루 — 과전법 풀어보기
"경기 토지를 관리에게 수조권으로 지급" — 이 6글자 뒤에는 한 농부의 하루가 있다.
고려 말, 경기도 어느 마을. 김 농부의 할아버지가 손수 일군 5천 평 땅이 있었다.
어느 날 한양의 박 대감이 종이 하나를 들고 와서 말한다.
"이 땅은 원래 우리 집안 거다. 너희가 백 년 빌려 농사지은 거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지만, 박 대감 뒤에는 권문세족 친척과 사병이 있다.
김 농부는 항의 못 한다. 그날부터 자기 땅에서 소작농이 된다.
수확하면 70%를 박 대감에게 바친다.
세금? 박 대감은 안 낸다. "권문세족 면세지." 국가 곳간은 비어간다.
이런 김 농부가 수십만 명. 이런 박 대감이 수백 명.
1391년, 과전법 시행 후.
위화도 회군 직후, 정도전은 권문세족이 빼앗은 모든 농장의 토지 문서를 모아 불태웠다.
"법적 근거가 사라졌으니 이제 다 국가 땅이다."
새 분배 시스템:
① 땅은 농민이 다시 갖는다 (자영농)
② 농민은 국가에 정해진 세금(보통 10%)만 낸다
③ 그 세금 일부를 관리에게 월급 대신 가져가게 한다 (= 수조권)
④ 단, 경기도 땅만 (감시 쉽게)
⑤ 관리가 죽으면 국가가 회수 (자식한테 세습 X)
김 농부의 결과:
옛날 70% 빼앗김 → 이제 10%만 세금. 90%는 내 것.
📊 무엇이 바뀌었나
| 옛 시스템 | 과전법 |
| 땅의 주인 | 귀족 | 농민 |
| 농민 신분 | 소작농 (농장 노예) | 자영농 (국민) |
| 세금 | 귀족이 면제 | 농민이 10% 납부 |
| 세금 받는 자 | 귀족이 다 가져감 | 국가 → 일부는 관리(수조권자)에게 |
| 관리 사망 시 | 자식이 세습 | 국가가 회수, 재분배 |
| 적용 지역 | 전국 (귀족 마음대로) | 경기도만 (감시 쉽게) |
⚡ 학생이 가져갈 통찰
"수조권으로 지급" 6글자에는 김 농부의 하루가 들어 있다.
누가 무엇을 잃었고 누가 무엇을 얻었는지 — 그걸 보면 모든 제도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도전은
"어려운 한자말로 사람을 속이는 정치"가 아니라
"구체적 풍경을 바꾸는 정치"를 했다.
너도 정책을 평가할 때 이렇게 봐라:
"이 정책으로 누가 어떤 풍경에서 살게 되는가?"
⚖️ 5개 개혁 매칭 게임
각 개혁은 구체적 풍경의 문제에 대한 처방이다.
왼쪽 "병든 풍경"을 누른 다음, 오른쪽 "처방"을 눌러 짝을 맞춰보자.
📌 왼쪽 풍경을 먼저 누르세요 (0/5)
🎉 다 맞췄다!
⚡ 핵심 깨달음
개혁가는 "문제의 풍경"을 본 사람만 될 수 있다.
정도전은 책상에서 만든 사람이 아니다. 유배지에서 농민의 얼굴을, 사찰의 노비를, 사병의 군대를 직접 보았다.
Q4(나만의 개혁안) 비결: 한자 용어로 시작하지 마라. 내 주변에서 "이상한 풍경"을 먼저 떠올려라.
💡 Q4 — 정도전식 사고법 5단계
아래 5단계에 너의 답을 직접 입력하라. 마지막 단계에서 종합본이 자동 정리된다.
입력 내용은 자동 저장되어 다음에 다시 와도 남아 있다.
1
풍경 보기
내 주변·뉴스·역사에서 "왜 이게 이런가?" 싶은 장면. 구체적인 사람, 구체적인 하루, 구체적인 손해.
2
누가 잃고 누가 얻나
그 풍경에서 누가 손해 보고, 누가 이득 보는가? 이득 보는 쪽이 강하기 때문에 풍경이 유지된다.
3
원인 캐기
왜 이 시스템이 생겼나? "문화가 그래서"는 답이 아니다. 시스템과 권력으로 답하라.
4
처방 그리기
도덕 호소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못 하게 되는 처방. 정도전의 과전법 = "귀족이 땅을 못 빼앗게 한다."
5
부작용 예상
내 처방의 새 문제는? 정도전은 사병 혁파로 왕자들의 분노를 샀고, 그 분노가 그를 죽였다. 모든 개혁에는 적이 생긴다.
📋 너의 개혁안 종합본
② 잃는 자와 얻는 자
(2단계를 채우면 여기에)
💡 두 번째 개혁안도 만들고 싶으면, 첫 번째 종합본을 복사해 둔 뒤 초기화하고 다시 5단계 진행.
❓ 정도전이 우리에게 남긴 4가지 질문
수행평가가 끝나도 이 4개 질문은 너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각 질문에 너의 답을 적어보자. (자동 저장)
① 나는 누구의 얼굴을 보고 살아가는가?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농민의 얼굴을 봤기 때문에 새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너는 누구의 얼굴을 보고 사는가? 너의 친구만? 너와 비슷한 사람만?
보지 않은 사람의 삶은, 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② 나는 시스템을 의심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산다.
정도전은 "왜 원래 그래야 하지?"라고 물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중에 누군가에게는 폭력인 것이 있다. 그걸 발견하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③ 나는 비판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정도전은 살아서는 죽음으로, 죽어서는 467년간 "역적"으로 불렸다.
진짜 개혁은 박수받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리를 거는 일이다.
SNS 좋아요만 추구하면 진짜 변화는 만들 수 없다.
④ 어떤 정답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정도전이 도입한 성리학도, 200년 후엔 또 다른 개혁 대상이 됐다.
지금 네가 옳다고 믿는 것도, 언젠가 비판받을 수 있다.
"나는 늘 더 배울 수 있다"는 자세 — 이게 정도전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 시험장에서 — 한 줄 요약
정도전은 천민의 손자였다.
유배지에서 백성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서 풍경을 바꾸는 정치를 했다.
5개 개혁은 5개 풍경에 대한 5개 처방이었다.
그는 자기 신념 때문에 죽었고, 467년간 욕먹었고, 1865년에야 명예 회복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정책이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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